의욕이 없어 보이는 소중한 사람에게 들려줄 이야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는 너를 바라볼 때가 있다. 무언가를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는 안다. 너는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잠시 지쳐 있을 뿐이라는 것을. 삶이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답을 찾기보다 조용히 숨을 고르게 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의욕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유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유가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안개 속에서는 목적지도, 발걸음도 흐릿해진다. 그럴 땐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멈춰 서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도 괜찮다. 우리는 종종 의욕이 있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말했다. “인간의 본질은 노력(conatus)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성취를 향한 분주함이 아니다. 살아 있으려는 최소한의 움직임, 오늘을 버티는 마음, 내일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태도. 지금의 너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의욕이 없는 날들은 우리에게 실패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회복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고 불렀다. 우리는 원해서 이 삶에 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여기에 놓였다. 그러니 가끔은 이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아직 삶과 단절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혹시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이 말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거창한 목표도, 불타는 열정도 필요 없다. 오늘 하루를 견뎌낸 것,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완성이다. 의욕은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듯, 마음도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를 지나야 한다. 그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의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 의욕이 없는 너도 여전히 소중하고, 지금의 너 역시 삶의 한 과정이다. 다시 걷고 싶어질 때, 그때 한 발 내딛으면 된다. 그 전까지는, 그냥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혹시 잊을까 봐 덧붙인다. 너는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