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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9

왜 철물점은 사라지고, 다이소는 늘어나는가

왜 철물점은 사라지고, 다이소는 늘어나는가

동네 철물점은 설명이 필요한 공간이었다. “이거 뭐에 쓰실 건데요?” “벽에 다는 거면 이 앙카 말고 저쪽.” 철물점 주인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해석해 주는 사람이었다. 반면 다이소는 묻지 않는다. 물건은 스스로 말한다. 가격은 항상 같다. 고민은 통로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끝난다. 철물점이 사라지고 다이소가 늘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설명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물점의 물건은 목적 중심이다. “이 나사는 선반을 고정하기 위한 것”이고 “이 톱은 이런 나무에 적합하다.” 다이소의 물건은 감정 중심이다. “일단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싸니까 실패해도 괜찮고”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정확함보다 가능성을 산다. 철물점은 틀리면 안 된다.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강도가 부족하면, 바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철물점에는 긴장감이 있다. 다이소는 틀려도 된다. 망가지면 다시 사면 된다. 실패가 경험이 아니라, 소모품이 된다. 현대 사회는 실패를 줄이기보다 실패를 가볍게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시간이다. 철물점에서는 기다려야 한다. 주인이 찾고, 설명하고, 맞춰준다. 그 시간은 거래 이전의 신뢰를 의미한다. 다이소에서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셀프 계산대 앞에서 우리는 이미 결정을 끝냈다. 우리는 이제 신뢰보다 속도에 익숙한 인간이 되었다. 철물점은 관계의 가게였다. “아, 지난번에 그거 고치신 분이죠.” 기억은 재고보다 오래 남았다. 다이소는 익명의 가게다. 누가 샀는지, 왜 샀는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회전율이다. 관계는 유지 비용이 들고, 익명은 확장에 유리하다. 그래서 철물점은 사라지고 다이소는 늘어난다. 기술 때문도, 자본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을 많이 해본 사람이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철물점은 “이게 맞다”고 말해주고, 다이소는 “이것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지금의 우리는 맞음보다 괜찮음을, 정확함보다 편안함을, 관계보다 접근성을 선택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어느 골목에서 아직 살아 있는 철물점을 만나면 괜히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이건 이런 데 쓰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잠깐이나마 모든 것이 설명되던 세계에 서게 되니까. 그 세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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