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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

요강과 자리끼

요강과 자리끼

요강과 자리끼는 집 안에서 가장 조용한 물건들이다. 말이 없고, 눈에 띄지도 않으며, 낮에는 존재를 잊힌다. 그러나 밤이 오면, 특히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그들은 반드시 필요해진다. 요강은 몸의 마지막 부탁을 받아주는 그릇이다. 낮 동안 참아왔던 것들, 체면 때문에 미뤄두었던 것들, “지금은 아니야”라고 눌러왔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흘러 들어간다. 요강 앞에서 인간은 더 이상 역할을 연기하지 않는다. 부모도, 직장인도, 어른도 아니다. 단지 생물로 돌아간다. 자리끼는 그 옆에 놓인 물이다.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혹시 모를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갈증이 생기기 전부터 준비된 배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고통을 예상한 마음이다. 자리끼는 “필요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응답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물건의 성격 차이다. 요강은 처리의 도구이고, 자리끼는 회복의 도구다. 하나는 비워내고, 하나는 채운다.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만들고, 하나는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을 준다.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종종 자리끼만 챙기려 한다. 성장, 치유, 보충, 긍정. 그러나 요강 없이 자리끼만 있는 밤은 불안하다. 비워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회복은 언젠가 넘쳐흐른다. 요강을 부끄러워하는 문화는 약함을 숨기려는 문화다. 그러나 진짜 품위는 어디에 요강을 두느냐가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쓰는 데 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용기,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자리끼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침상 곁에 놓인 자리끼는 말없는 사랑이다. “밤중에 목이 마를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은 미래의 나, 혹은 타인에 대한 신뢰다. 지금의 내가, 잠든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결국 요강과 자리끼는 한 쌍이다. 비워낼 것을 준비하는 지혜와 다시 채울 것을 남겨두는 자비. 둘 중 하나만으로는 긴 밤을 건널 수 없다. 어쩌면 성숙이란 요강을 숨기지 않고, 자리끼를 잊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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