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주파수, 이름 없는 흥얼거림에 대하여

설거지통에 그릇이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 사이로, 혹은 늦은 밤 복잡한 서류를 들여다보는 적막 속에서 문득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소리 내어 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라디오에서 들었던 유행가도 아니고, 어제 카페에서 들었던 클래식 선율도 아니다. 가사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으며, 악보에 적을 수도 없는 정체불명의 소리. 굳이 표현하자면 "음- 음-" 하는 낮은 진동에 가깝다. 나는 오늘 이 '노래가 되지 못한 흥얼거림'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1. 나를 지키는 백색소음 (White Noise) 이 이름 없는 흥얼거림의 첫 번째 정체는 '스스로를 위한 위로'다. 고양이가 가장 편안하거나 안정이 필요할 때 목을 울려 '골골송(Purring)'을 부르듯, 인간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진동을 만들어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입을 다물고 비강을 울려 내는 '험(Hum)' 소리는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심박수를 낮추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순간은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조금 지쳤어" 혹은 "안정이 필요해"라고 보내는 신호인 셈이다. 적막이 두려울 때, 혹은 과도한 업무로 뇌가 과열되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백색소음을 만들어내며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2. 몰입을 위한 시동 소리 두 번째 정체는 '집중의 엔진음'이다. 무언가에 깊게 몰입해 있을 때 나오는 흥얼거림은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다. 단순 노동을 하거나 깊은 생각에 잠길 때 나오는 리듬감 있는 흥얼거림은, 뇌가 딴청을 피우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닻과 같다. 이때의 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주문(呪文)에 가깝다.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내 눈앞의 과업에만 집중하겠다는 무의식의 선언이다. 마치 낡은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기 위해 끊임없이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듯, 우리도 삶을 굴러가게 하기 위해 소리를 낸다. 3. 영혼의 새어 나옴 하지만 무엇보다 이 흥얼거림의 가장 아름다운 정체는 '감정의 누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화된 어른으로서 감정을 언어로 포장하고 표정으로 감추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무의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흥얼거림은 멜로디가 솟구치듯 가볍고, 우울할 때 나오는 소리는 땅으로 꺼질 듯 무겁다. 가사가 없기에 더욱 솔직하다. 언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면의 상태가 날것 그대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정체불명의 소리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내는 흥얼거림을 듣고 나서야 '아, 나 오늘 기분이 꽤 괜찮구나' 하고 뒤늦게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증거 노래도 아니고 말도 아닌 이 소리의 정체는 결국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청각적 증거'가 아닐까. 세상이 요구하는 정해진 악보대로 살아가느라 지친 우리에게, 이 흥얼거림은 유일하게 음정과 박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멍하니 있다가 정체 모를 소리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흠칫 놀라 입을 다물지 말자. 대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지금 내 영혼이 나에게 어떤 주파수를 보내고 있는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지만, 가장 진솔한 나만의 음악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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