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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5

​나만의 주파수, 이름 없는 흥얼거림에 대하여

​나만의 주파수, 이름 없는 흥얼거림에 대하여

설거지통에 그릇이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 사이로, 혹은 늦은 밤 복잡한 서류를 들여다보는 적막 속에서 문득 깨닫는 순간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소리 내어 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라디오에서 들었던 유행가도 아니고, 어제 카페에서 들었던 클래식 선율도 아니다. 가사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으며, 악보에 적을 수도 없는 정체불명의 소리. 굳이 표현하자면 "음- 음-" 하는 낮은 진동에 가깝다. 나는 오늘 이 '노래가 되지 못한 흥얼거림'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 ​1. 나를 지키는 백색소음 (White Noise) ​이 이름 없는 흥얼거림의 첫 번째 정체는 '스스로를 위한 위로'다. 고양이가 가장 편안하거나 안정이 필요할 때 목을 울려 '골골송(Purring)'을 부르듯, 인간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을 악기 삼아 진동을 만들어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입을 다물고 비강을 울려 내는 '험(Hum)' 소리는 미주신경을 자극하여 심박수를 낮추고 긴장을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순간은 내 몸과 마음이 "지금 조금 지쳤어" 혹은 "안정이 필요해"라고 보내는 신호인 셈이다. 적막이 두려울 때, 혹은 과도한 업무로 뇌가 과열되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 백색소음을 만들어내며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2. 몰입을 위한 시동 소리 ​두 번째 정체는 '집중의 엔진음'이다. 무언가에 깊게 몰입해 있을 때 나오는 흥얼거림은 일종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다. 단순 노동을 하거나 깊은 생각에 잠길 때 나오는 리듬감 있는 흥얼거림은, 뇌가 딴청을 피우지 못하도록 붙잡아두는 닻과 같다. ​이때의 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주문(呪文)에 가깝다. 복잡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롯이 내 눈앞의 과업에만 집중하겠다는 무의식의 선언이다. 마치 낡은 자동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기 위해 끊임없이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듯, 우리도 삶을 굴러가게 하기 위해 소리를 낸다. ​3. 영혼의 새어 나옴 ​하지만 무엇보다 이 흥얼거림의 가장 아름다운 정체는 '감정의 누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회화된 어른으로서 감정을 언어로 포장하고 표정으로 감추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무의식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흥얼거림은 멜로디가 솟구치듯 가볍고, 우울할 때 나오는 소리는 땅으로 꺼질 듯 무겁다. 가사가 없기에 더욱 솔직하다. 언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내면의 상태가 날것 그대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정체불명의 소리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내는 흥얼거림을 듣고 나서야 '아, 나 오늘 기분이 꽤 괜찮구나' 하고 뒤늦게 내 상태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증거 ​노래도 아니고 말도 아닌 이 소리의 정체는 결국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청각적 증거'가 아닐까. ​세상이 요구하는 정해진 악보대로 살아가느라 지친 우리에게, 이 흥얼거림은 유일하게 음정과 박자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멍하니 있다가 정체 모를 소리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흠칫 놀라 입을 다물지 말자. 대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지금 내 영혼이 나에게 어떤 주파수를 보내고 있는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지만, 가장 진솔한 나만의 음악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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