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하여

“신은 죽었다.” 이 선언은 파괴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짜라투스트라는 산에서 내려온 예언자처럼 사람들 앞에 선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 그는 인간을 칭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라고. 인간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며,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줄 위의 존재다. 초인은 초능력을 지닌 영웅이 아니다. 초인은 기존의 도덕과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타인이 정해준 선과 악, 옳고 그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이 가치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것을 부수고 새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니체는 이를 **‘마지막 인간’**이라 부른다. 마지막 인간은 안전을 원하고, 불편함을 싫어하며, 질문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깊이가 없다. 도전 없는 평온, 위험 없는 안정, 의미 없는 만족일 뿐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고통을 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삶은 필연적으로 무겁고 잔인하다. 그렇기에 니체는 묻는다.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너는 그것을 다시 원하겠는가? 이것이 영원회귀의 질문이다. 도피가 아닌 긍정, 후회가 아닌 수용. 삶 전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를 시험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상의 중심에는 의지가 있다. 더 강해지려는 의지, 더 창조하려는 의지, 자기 자신을 넘어가려는 권력 의지. 이는 타인을 지배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지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이기 때문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설명서가 아니다. 이 책은 명령하지 않고, 유혹한다. 길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 길이 되라고 말한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불편하다. 이해되기보다는 부딪히고, 공감되기보다는 흔들린다. 니체는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지 가능성을 내민다. “너 자신을 극복하라.” 그것이 이 책이 끝내 전하고자 하는 유일한 메시지다.
